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마키케 + #19조... 친구들이 되겠습니다... (...)
"시노다 본부장은 곤란해하는 일이 있긴 할까?"
누군가가 내민 서두에 아키요시는 마시던 음료에서 입을 떼고 내려놓았다. 익숙한 동갑들의 면면이 모여있는 공간엔 잔잔하고 평화로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고, 언제나처럼 시답잖은 사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별로 상상은 안 가는데."
킷타카가 말을 꺼냈고, 카키자키는 애매한 웃음으로 동의했다.
"확실히. 뭐랄까 본부장은... 곤란한 일이 생겨도 단호하게 잘라내거나..."
"그냥 웃는 표정으로 해결할 것 같네."
츠키미가 문장을 마무리하자, 가만히 턱을 괴고 있던 진이 약하게 웃음을 흘렸다.
"아아, 시노다 씨는 역시 그렇지."
나도 시노다 씨가 엄청 곤란해하는 상황은 별로 못 본 것 같아. 그냥 티를 안 낸 걸 수도 있지만. 이어진 진의 말에 아키요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동의하는 바이다. 얼핏 보면 위협적인 자세로 나란히 앉아있던 유바와 후지마루는 비슷한 타이밍에 고개를 기울였다.
"아키요시, 너랑 타치카와 씨 때문에 자주 곤란해하지 않냐?"
유바가 동의한다는 시선을 아키요시에게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 그리고 학점이겠지."
친절하게 이어진 보충 설명에 아키요시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괜히 냅킨을 만지작거렸다. "딱히. 그건 그냥 잔소리지." 적당히 미지근한 눈빛들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킷타카는 적당히 주위를 환기시켰다. "제자기도 하고, 꽤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곤란해하는 정도는 많이 봤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아키요시는 무언가 떠올리려는 것처럼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해봐야 하는 거야...? 그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닌데... 친구들의 말소리를 흘리며 생각해보던 아키요시는 아, 하는 탄성음을 내뱉었다.
"확실하게 한 번은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 같군."
그때 표정이 웃기다면 웃겼는데. 이어진 말에 퍽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카키자키는 그렇게 어른인 스승이자 상사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아키요시는 조언은 무시한 뒤, 대신 멀리서 다가오는 붉은 두 덩어리를 보고 자리를 뜰까. 짧은 고민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이코마가 먼저 말을 걸었기에 실패로 돌아갔지만.
"뭐야, 재밌는 거라도 해?"
"여기 다 모여있었네."
불어나버린 인원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던 테이블에 이코마와 아라시야마까지 잠시 동안 시간을 보내기로 했고, 아키요시는 애초부터 안쪽에 앉은 덕분에 탈출의 행방이 더욱 묘연해졌다. 아키요시가 멍하니 테이블에 머리를 두들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든 말든, 전혀 쓸데없고 유용하지 않고 심지어는 흥미롭지도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어지간히도 심심한가. 킷타카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말로 뱉지는 않았다. 물론, 아키요시는 말로 하려다가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트리기 싫은 유능한 진에게 제지당했지만.
"누군가가 공개 고백이라도 하면 곤란해하지 않을까."
"아, 그건 가능성이 있을 지도."
동시에 츠키미의 시선이 아키요시에게로 향했다. 다른 애들에게 말했을지 안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츠키미는 아키요시에게서 아키요시가 본부장에게 고백을 했었다는 일을 들었었다.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얘기를 해주는 편이라 놀랐었지. 방금 한 번 곤란해 한 걸 봤다는 일은 고백의 건일까?
"그건 말로는 곤란하다는데, 겉은 별로 티 안 내더라."
음, 아니었나 보군. 츠키미는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을 뒤로 넘기며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슬슬 부대실로 돌아가고 싶네.
"고백받는 걸 봤어?"
솔직한 물음에 아키요시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니? 내가 고백했었는데."
진은 입꼬리만 올린 채로 고개를 돌렸고, 나머지는 대체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 아키요시 너 시노다 본부장을 좋아했냐?" 황당하다는 투에 아키요시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금방 풀었다. "존경과 착각했어. 좀 지난 일이야." 그 말에 유바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본부장의 제자 두 명은 전투광 기질이 있었고. 그걸 충족시켜주다 못해 우위에 서있는 스승의 강함에 두 제자는 잘... 따른다고 해야 할까. 성격 강한 둘임에도 말은 참 잘 듣고 있지 않은가. 그들과 비슷하게 전투에 열망이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자면 매료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고백 정도로는 당황 근처는 되어도 곤란은 안 된다?"
"본부장도 사람인데 더 밀어붙이면 도망치지 않을까."
그냥 들으면 퍽 무서운 대화가 오가고 있지 않나? 카키자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별로 대화를 끊거나 넘겨듣지도 않았다. 대학생들에겐 적당히 시간을 태울 수 있는 대화거리가 언제나 필요하다. "뭐, 그럴 지도..." 아키요시는 본부장도 사람...? 정도의 표정을 지었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급격히 뛰었다. 이코마가 턱 밑에 V자를 그리며 손가락을 가져다 댄 채로 입을 열었다. 퍽 진지한 투다.
"한 번 고백해보는 건?"
아무도 새겨듣지 않고 다른 대화가 오갔기 때문에 이코마는 입을 닫은 채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앗." 즐겁게 대화를 관망하던 진이 감탄사를 내뱉음과 동시에 시야에 불청객이 나타났고, 진은 이코마의 말을 받아줄까? 싶었지만 재밌어진다면 재밌어질 상황이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 이코마가 엄청난 시선으로 바라보길래 왔는데. 완전 바글바글하네?"
능청스러운 타치카와의 목소리에 아라시야마가 웃으며 대화를 받아냈다.
"수고 많으십니다! 마침 타치카와 씨랑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흠? 어떤?"
"시노다 씨가 곤란해할 때는 언제인가~ 정도?"
"하핫, 무슨 그런 얘기를 해?"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끼어든 타치카와는 들고 왔던 캔음료를 내려놓으며 계속 대화를 나눴다. 아니, 딱 봐도 지금 동갑끼리 있었는데 이걸 껴드네. 미친 눈치 없는 새끼. 아키요시는 타치카와를 노려보다 다 먹어버린 음료를 손으로 밀어 멀찍이 치워버렸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게 더 웃긴 사실임을 깨달으며 아키요시는 입을 열었다.
"넌 뭐 본 적 없어? 시노다 씨랑은 네가 더 오래 봐왔잖아."
"혼난 적은 많은데."
"그건 나도 많이 봤고."
"뭐, 사사로운 반응은 아키 네가 더 많이 보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군. 아키요시가 납득해서 대답을 하지 않자 타치카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친밀한 사람이 더 끈질기게 고백해 봐. 내 생각엔 확실히 곤란해 할 걸. 도망치는 근처도 웃기겠네."
아, 여기였군? 진은 이런 맥락에서 저런 대사가 나왔다는 점을 드디어 깨달았지만, 이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키요시 너는 그땐 지금처럼 가까운 건 아니었으니 지금 하면 다를 거고, 진이나 코나미도 되려나."
아키요시와 유바, 이코마를 제외하고는 다들 웃는 표정이었다. 츠키미는 어쩐지 즐거워 보였기에 아키요시는 츠키미와 타치카와는 역시 닮았다는 감상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타치자와 너도 포함이지."
푸핫. 실없는 웃음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비죽 튀어나왔다. 타치카와 또한 웃는 표정을 지우진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하면 역시 장난 같지~" 진은 그럼 나는? 하고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걸 겨우 삼켰다. "그럼 유이치도 따지면 너랑 성격이 비슷한데?" 대신 아키요시가 해주어 몰래 감사를 전했다.
"아~ 그런가? 뭐, 모르지. 그 사람은 대체로 반응이 뻔하긴 하지만 이런 데는 나도 잘 모르고."
이코마는 본부장을 그 사람이라고 호칭하는 곳에서 츳코미를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지만, 뭐 됐나. 싶은 기분에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실제로 할 생각 만만? 되게 할 것 같은 분위긴데 지금."
3초의 정적 후, 타치카와가 선수를 쳤다. "진이 할래 그러면?" 타이밍을 놓쳤다는 듯 억울한 목소리로 진이 반박했다. "아~ 타치카와 씨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보다는 제자 둘이 낫지?" 아키요시가 껴들었다. "난 안 할 거야. 것보다, 지금 나 좀 가도 돼?" 아라시야마가 살짝 웃으며 의견을 표했다. "재밌을 것 같네." 후지마루가 크게 웃었다. "와 네가 말하니까 정말 될 것 같아서 웃기다." 유바가 정신 나간 사람들을 보는 시선으로 테이블을 바라보았지만 말은 얹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군. 카키자키는 유바의 표정을 살피다 슬쩍 말했다. "웃길 것 같긴 해." 킷타카가 생긋 웃었다. "100% 전부 혼나겠네." 츠키미는 고개만을 끄덕였다. "확실히."
"그래도 할 거지?"
재밌잖아. 너희는 지금 심심하고. 츠키미는 타치카와의 말에 동의하는 대신 질문을 건넸다. "누가?" 타치카와의 시선은 진을 향했다가 아키요시를 향했다. "나는 진~짜 아니지? 암약을 즐기는 실력파 엘리트는 시노다 씨랑 얼굴 안 본 지도 꽤 됐다고? 게다가 말이 안 되잖아, 무슨 연유가 있다고 내가..." 구구절절하게 늘어나는 말에 주변인은 안타깝다는 시선을 진에게 던졌다. 하하, 그래 차라리 그렇게 봐주라. 고맙다. 허탈해 보이는 표정에 모두가 슬쩍 아키요시를 바라보았지만, 아키요시는 애초에 끼고 싶지 않았던 일을 시킬 경우 아마 이곳의 모두를 베어버리고 창문을 깬 뒤 집에 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말 꺼낸 사람이 해."
간단명료한 해답에 타치카와는 "당연히 다 농담이지~" 가볍게 대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즈음이면 본부장도 회의 끝났겠네요." 텁. 어깨 위에 올라온 손을 내치고 뛰어서 도망가면 안 잡힐까? 아, 아니다. 아마 카키자키나 유바에게 잡히겠지. 그 녀석들이 뛸지는 모르겠지만, 타치카와가 뛰쳐나가면 반사적으로 쫓아올 가능성이 높다. 복작복작 즐거워 보이는 분위기에 아키요시도 좋은 표정이어서 꼈더니, 항상 뭐든 가볍게 내뱉는 습관을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 타치카와가 스스로 고칠 일은 아마 없겠지만.
"본부장의 일정도 알고 있는 거야? 아라시야마가 해보는 건?"
"아무래도 따로 보고하거나 일정을 잡아야 할 때도 있어서요, 직속의 대표 부대니 굵직한 건 알아야죠."
"아니 이게 통할 리가 없지?"
"해보기 전엔 모르니까."
타치카와는 제 생각보다 1살 연하의 무리들이 거칠구나, 하는 감상을 느꼈다. 제 또래들이 순하다면 더 순한가. 한두 명 빼고는. 이 회사는 전체적으로 많은 친구들이 연장자를 거리낌 없이 막 굴린다는 점에서 글러먹었다. 물론 나도 글렀고. 타치카와는 트리온체로 변할까 말까 고민하며 순순히 발을 옮겼다. 진은 아니지만 뻔히 보이는 미래의 결과는 재미도 감동도 없다.
뭐, 결론만 말하자면 타치카와의 생각처럼 뻔하고 감동도 없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웃기다면 웃겼기 때문에 어쩌면 재미는 챙겼을까. 아키요시는 일단 지랄났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웃긴 웃었으니.
저 앞 복도를 걸어가는 뒤통수를 노려보며 타치카와는 자신의 스승이 앞으로 벌어질 일이 장난임을 알았을 때의 후폭풍을 가늠했다. 대학을 성실히 다녀볼까.
"시노다 씨."
대답 없이 슬쩍 뒤를 돌아본 시노다는 걸음을 멈추는 대신 보폭을 늦추었다. 보통은 걸어가면서 대화하니 그렇겠지. 타치카와가 자리에서 멈추자 시노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동시에 멈추었다. 발걸음을 돌려 가까이 오는 친절함에 멀리서 바라보던 아키요시는 역시 더럽게 혼날 미래에 미리 피곤함을 느꼈다.
뜬금없이 좋아한다는 타치카와의 대사는 말하는 당사자의 이미지에 의해서 그렇게 붕 떠 보이지는 않았다. 저딴 식으로 말해도 듣는 상대가 이게 장난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정말 존경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키요시도 적나라하게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현재 진행형으로 느끼고 있으니 당황한 표정을 지은 시노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불쌍한 본부장.
"케이, 너..."
그거 장난이야? 차마 말을 다 잇진 않았지만, 거기 있던 절반 이상이 삼켜진 대사를 예상할 수 있었다. 저걸 다 말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가히 만점을 받을 만하다. 후지마루의 단순한 감상이긴 하지만, 만약 아주 연하의 제자가 저런 말을 하면 후지마루는 꿀밤을 때려주고 장난치지 말라며 웃었을 것이다.
대답 없이 상대를 노려보는 타치카와의 모습은 사실 정말 대충하고 있음이 틀림없지만, 저런 모습이 전투 외에선 흔치 않는다는 점에서 혼란을 불러오기는 했다. 참 장난에 적합한 성격이군. 카키자키는 저것도 재능이 아닐까, 싶었다. 조용히 타치카와를 바라보며 말을 고르던 시노다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너는, 그런데..."
곧바로 끊겨버렸지만. 이건 절반도 아니고 전부가 알 수 있는 대사였다. 너는 아키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아주 명확하게 보이는 사실이네. 타치카와가 본인이 나서면 장난이 먹혀들 확률이 낮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대놓고 아키요시를 따라다니는데 더 얹을 말이 있나? 학창 시절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게 아니라면 괴롭힘에 가깝기도 한 거짓 고백 장난은 여러 번 얽혀보았었다. 뭐 대학생도 예외는 아닐까. 거짓 고백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타치카와는 충분히 비슷한 결을 겪었다, 제 성격과 퍽 어울리긴 하지.
아, 그래도 이건 아니다.
곧바로 화난 목소리로 이런 장난은 치지 마. 정도의 반응이 베스트인데. 역시나라면 역시 표정을 굳힌 채로 생각에 잠긴 스승은 이럴 때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장난이었다는 걸 숨기고 그냥 타치카와가 미친 척 짜잔, 두 사람을 좋아해 봤다는 소리를... 역시 이쪽도 헛소리군.
"정말이야? 케이."
타치카와는 지금이라도 웃는 표정으로 저 멀리 바글바글 숨어있는 녀석들에게 시노다를 데려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덜 혼날까. 타치카와가 돌려봤자 쓸모없는 머리를 굴리며 잔꾀를 생각하는 동안, 시노다는 대답 없는 타치카와를 바라보았다.
이건 아마 장난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가까운 주변에 다른 인기척은 없지만 이런 장난에 보통은 더 떨어져 있으니. 타치카와가 아키요시를 나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건 봐와서 안다. 타치카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편 아닌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아는 한은 그랬다. 입을 닫고 있다는 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잘 달래서 안 한다고 하면 됐을 걸.
"...음, 그럼. 언제부터?"
타치카와는 시노다의 표정을 살폈다. 확실히 화가 난 건 아니다. 아니, 이건 오히려... 타치카와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타치카와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 애초에 시노다의 말에 웃음기가 섞여있는데, 이 사람도 참 어른은 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마 오로지 타치카와만, 어쩌면 아키요시 정도만이 느낄 것이다.
"알면 뭐가 달라지나."
갑자기 소통하는 사제의 대화가 들려와 진은 한숨처럼 웃음을 뱉어냈다. 아키요시는 시노다가 언제부터, 라는 말을 꺼냈을 때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런 게 재밌을까. 그래도 저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는 인물이 저 사제라는 점에서 확실히 가십거리는 될 것이다. 명백하게 5분 뒤 즈음에는 다들 한소리 듣고 있겠지만. 시노다라면 장난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키요시는 들어맞은 예상을 하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퇴근하고 싶군.
"16살... 때부터 였던가?"
큽, 푸흑. 터져버린 웃음들 사이로 츠키미는 유유히 자리를 옮겼다. 슬슬 방위 임무 시간이 다가오니 다들 가게 두었으며, 아키요시는 크흠, 헛기침을 내뱉었다. 웃어버렸네. 츠키미가 웃어버린 아키요시에게 살풋 미소 지은 뒤 사라졌기에 아키요시는 머쓱하게 시선을 옮기다 벽에 머리를 기댔다.
이젠 누가 봐도 콩트인 상황에 모두가 황당해하고 있었다. 곤란은 무슨. 일반 대원의 입장에서 본부장이 곤란해하는 반응을 보려면, 차라리 복도에서 기습으로 다리를 쳐 넘어트리는 것이 배는 즉효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보다 강해지기 전까지는 무리다."
"와... 그러다 결혼 못 해 시노다 씨."
"케이 너한테만 해당하는 거니 괜찮겠지."
"너무하네. 지금 10판 할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길게 가지도 못하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 대화에 다들 하하, 웃었다. 너무 티가 나기도 했고 이런 게 통할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노다 본부장이 장단을 맞춰준 게 웃기다고 해야 할까, 의외라고 해야 할까.
"바쁘다. 다음에 혼낼 거니까 동조자들 이름이라도 적어두던가 해."
"에~ 그냥 나 혼자 혼날게. 어차피 내 생각이었어."
"그건 뻔하지."
시노다 씨 이상형이 자기보다 강한 사람인 거 소문내야지. 그러던가, 애초에 연애할 생각도 없어. 와아 진짜 재미없다, 아키요시도 이건 질려했을 걸. 케이 네가 16살부터 나를 좋아했다는 게 더 충격이구나. 진짜 슬슬 아키 보러 가야겠다, 일 수고해 시노다 씨.
콩트 같았지만 대화였던 것이 끝나고, 타치카와가 손을 흔들며 복도 끝으로 걸어왔다. "혼자 혼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엄지를 척, 보여준 뒤 다들 웃는 표정으로 동의하며 재밌는 구경거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리저리 해산했다. "괜히 이름 다 적어두고 싶어 지는데." 타치카와의 말에 아키요시가 타치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이름을 맞게 적을 수는 있고?" 아키요시가 대답을 듣지 않고 앞서 걸어가자 타치카와가 뒤를 따랐다. "아마?" 적지 않을 테니 상관은 없겠지. 아키요시는 머릿속에서 문장을 끝내고 다시 닫아버렸다.
"네 말대로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반응은 더 리얼했겠군."
멍하니 걷던 둘 사이에 아키요시 말이 내려앉았다. 타치카와는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깔끔하게 의견을 내비쳤다.
"내가 말하긴 했지만, 그건 안 하는 게 확실히 나았네."
아키요시는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타치카와도 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고. 혼자 본부장실로 돌아가며 비슷한 생각을 한 시노다도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가 누구를 닮기 시작한 건지 우선순위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나.
아키요시는 뭐든 상관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