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검 약 4,700자
키스하는 게 보고 싶어서. 아픈 걸 핑계로 마우스 투 마우스를 합니다.
어떻게 아프나요? ... 그렇게 됐습니다.
툭, 차가운 천이 레이의 눈 위에 닿았다.
“아으….”
아니. 이건 차가운 걸 넘어서… 목 부근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시리다. 혼자 살았다면 뱉지 않았을 투정이 입 밖으로 흘러나갔다. “따가워요….” 저절로 드는 거부감에 목을 뒤척이며 천을 떨어트리려 하자 고개 옆으로 익숙한 손이 들어와 레이를 제지했다.
“얼씨구. 그니까 내가 그딴 실험 하지 말라고 했지.”
바보냐 너는…. 쯧쯧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검제가 레이의 고개를 바르게 했다. 오늘 등천도시 1층의 날씨는 맑음. 겨울을 훌쩍 지나 초봄을 맞은 도시의 온도는 시원하거나 따뜻하다. 소음과 빛을 완벽히 차단하는 커튼이 달린 창문으론 밖의 날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 방의 단점이었다.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브랜드의 침대가 덩그러니 놓인 10평 남짓한 방. 검제의 삭막하다는 평가에 방 몇몇 군데엔 철제 가구가 들어왔다. 고향에서 흔히 접했던 원목 가구가 아닌 점이 의외라면 의외일까. 실수로 발가락이라도 찧는다면 분명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플 게 틀림없었다. 일반인의 경우엔 말이지. 그리고 저놈의 청회색 벽지가 방의 온기를 앗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검제는 눈을 도르륵 굴려 색색, 열 오른 숨을 내뱉는 레이를 내려다보았다. 이쪽의 온도를 방이 조금 가져간다면 좋을 텐데.
백색 소음도 흡수할 듯한 채도 옅은 방을 본다면 누구나 주인의 취향이 참으로 고상하시구나, 예상할 것이다. 이렇게 침침하고 칙칙한 방은 주인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일까? 글쎄. 검제가 아는 레이란 취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선택할 수 없었던 50층의 주거지와 흡사한 이 공간이 언젠가는 검제를 닮아가길 바라며. 검제는 열이 올라 뜨거운 레이의 뺨을 약하게 쓰다듬었다. 그게 퍽….
검제가 누군가를 간호해본 경험이 없기도 하였으나 레이는 원래 열병을 앓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 무엇보다 어색했다. 뜬금없이 자신의 스킬이 그렇게 만능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건 자연히 얻는 병만 예방한다거나, 그래서 디버프 형식은 걸릴 거 같다거나. 이렇게 틈을 파고들어 얻게 된 질병을 고치는 스킬이 아니라면 미리 확인해야 한다. 줄줄 이어지는 브리핑에 검제는 ‘그래서?’ 그리 말했었다. 레이는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좀 아플 수도 있어요. 열이 나고, 몸살에 움직이지 못한다던가.’
‘그냥 감기네.’
‘어렸을 때 한두 번 걸려본 이후로 겪은 적 없는 병이지만요.’
‘내가 이해할 일 없는 또라이 같은 사고방식인 건 알겠다 이령아, 근데 그거 꼭 해야 하냐? 뭣하러 사서 아프고 그래.’
‘저를 돌보아 주실 거죠?’
‘어휴… 그러겠지….’
레이가 진심으로 간병 해달라 요청한 건 아니었다. 저건 그냥, 제가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고 통보한 거지. 다만 검제에게 ‘부탁하는 화법’이 잘 통한다는 걸 알아 써먹는 거였다. 똑똑하기도 해라. 누굴 닮아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나.
금방 미지근해진 천을 갈아주기 위해 이마에서 치우자 작게 찌푸려진 미간이 보였다. 감염병에 앓아본 적 없는 몸이 겪기엔 생소한 아픔일 터다. 레이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그가 어렸던 시절 이렇게 크게 앓은 적이 있었다. 사천당가에서 끄집어내자마자 고 짧은 다리로 불나게 따라다녔으니 당연히 몸살이 나겠지. 품 안에 안긴 그 어리고 작은 몸이 타는 듯 뜨거웠던 게 아직도 생생했다. 평생 기댈 곳이 없었던 아이가 겨우내 제 옷자락을 잡아 쥐니 참, 그걸 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신 겪을 일 없는 추억이라 생각했는데.
“이령아.”
레이는 들려온 이름에 흐려지는 의식을 다잡은 뒤 대답했다. 대답, 했다고 생각했다. 뇌 위를 거니는 문장을 잡아끌어 식도 위에 올리고, 폐에서 흐르는 바람을 이용해 목 밖까지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 당연한 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결국 나온 건 끄응, 하는 작은 신음이 다였다.
아… 아프다.
몸을 덮은 천이 스치기만 하여도 그렇게 쓰릴 수가 없었다. 신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건 예상보다 더 짜증 나는 일이었다. 안구에 열이 올라 외부 온도와 맞닿으니 생리현상으로 데일 듯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애초에 안 보이니 시야를 가리지는 않았으나 관자놀이나 턱 밑으로 흐르는 게 거슬렸다. 안 해도 될 고생을 자처해서 했으니 역시 불만은 못 뱉지. 레이의 눈물을 조심히 닦아낸 검제가 물었다.
“힘드냐?”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던 거 같다.
“아프면 괜히 속상하다던데, 그러진 않고?”
그래서 레이는 정말 그런가, 잠시 가늠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려는데 대답하기엔 정신이 개운치 않았다. 몽롱한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긴 했을 텐데…. 까무룩 렘수면에 빠지기 직전 레이의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 느리게 눈을 떴으나 그게 소용없다는 걸 1초 뒤에야 깨달았다. 그의 손가락인가? 검제가 말을 하자 제 턱을 받친 손바닥과 입술에 얹은 엄지손가락에 진동이 전해져 왔다.
“약 먹고 자야지.”
대답하려고 했다. 예, 알아서 먹을게요. 일어나서. 제 스스로….
“이령아, 일부러 디버프 심은 거라 안 먹으면 안 낫는다며. 얹어줄 테니까 입만 벌려 봐. 응?”
정신이 퓨즈라도 나간 듯 깜빡깜빡했다. 검제가 정확히 무어라 말하는지 전부 주워 담지 못하고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니 머리 위에서 한숨이 내려앉았다. 머지않아 그의 손가락이 입술을 밀고 이를 밀어낸다. 차가워. 반사적으로 스르륵 눈을 떴다. 열을 잔뜩 받은 뇌 때문인가, 전체적인 기척 감지가 둔해지고 모든 감각이 입 안으로 향한 듯했다. 손가락이 치아를 따라 안으로 움직이면 자연히 턱이 벌어졌다. 이물질 한 가지로 벌써 입 안이 빠듯하다. 여기서 콱, 손가락을 물면 어쩌시려고. 검제는 그런 걱정은 안 했는지 다른 걸 물었다.
“약 삼킬 수 있겠어?”
아니요. 이 발음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대답하자 검제가 픽 비웃는 소리와 함께 “알만하다.” 그리 말했다. 뭘 아신다는 거지. 열나본 적도 없을 인간이. 손가락이 쑥 빠져나가고 유지할 기력이 없어 레이의 입이 다물리는 사이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훌쩍 지나버린 옛적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땐 가루로 빻은 약초를 물에 녹인 걸 먹었더랬다. 입에 비집고 들어오는 까슬한 나무 숟가락이 달갑지 않았음에도 거기서 더 귀찮은 애가 되기 싫어 얌전히 받아먹었다. 지금은 수마에 못 이겨 뻗대는 꼴이니 더 후퇴했다고 볼 수 있겠네…. 아니면 그가 더 편해졌거나. 이번엔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레이는 따가운 눈가를 세게 쓸어내고 척추로 올라오는 오한을 피하고자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 즉시 잡힌 어깨가 다시 원 상태로 천장을 보게 만들었지만. 작게 으응, 짜증을 섞어 탓하는 중에 등을 받치듯 들어온 손이 레이의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다시 눕지 않게 목과 머리 아랫부분 전체를 감싸 쥔 검제가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갑작스레 흔들린 뇌가 소리를 질렀다. 어지러워, 어지럽고 일어난 덕에 이불이 떨어져 춥기까지 했다. 울컥 목이 막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약을 넘겨받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레이를 덮어오듯 닿아오는 품이 따뜻해 몸을 앞으로 수그리며 입을 벌리면, 고개를 꺾어 거의 수직으로 받아먹는 모양새였다. 그를 따라 입술 틈을 벌린 검제에게서 미지근한 물이 흘러 들어왔다. 반은 입 안으로, 반은 턱을 따라 줄줄 흘렀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급하게 식도로 넘어간 물에 레이는 반사적으로 올라오려는 기침을 참아야 했다. 남는 손으로 등을 토닥이던 검제가 알약을 밀어 넣은 직후 깔끔하게 떨어졌고, 헛숨에 헐떡이던 레이는 겨우 그걸 삼켜내었다. 몸 안쪽까지 못이라도 박은 건지… 따가운 통증이 들어온 약을 거부해와서. 그는 그걸 역류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괜히 고생하지?”
“쿨럭, 예… 괜히 고생하네요.”
“앞으론 하지 마. 그… 아예 아프지 말라는 건 아닌데, 네가 고생하는 게 보기 싫은 걸 어쩌냐.”
“고려해 볼게요.”
검제는 오냐, 불만스러운 투로 대답하곤 차가운 천으로 목 주변의 땀을 닦아내 주었다. 누군가를 간호한 경험이 있을 사람은 아닌데…. 레이가 다시 누우려 몸을 뒤로 빼자 쉽게 누울 수 있었다.
“전염병이면. 나한테 옮는 게 더 낫겠다.”
낮은 혼잣말에 레이는 잠시 눈을 떴고 다시 슬그머니 감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검제는 그 모습을 봤는지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다시 주저앉아 왔다. 삐걱, 그의 무게에 침대가 흔들렸다.
“이령아.”
“예.”
“옮겨지는 건가 보네?”
“뭐… 예…. 그렇죠. 당신 면역력에 감염될 가능성은 극히 낮겠지만요.”
“말이 길다.”
“검제. 그냥 접문하고 싶다 말을 하시… 집.”
아픈 사람 두 볼을 꾹 잡은 검제가 이제 다 나은 거 같은데? 비죽거리더니 금세 놓아주었다. 누운 상태로 받은 입맞춤은 비강이 막힌 덕에 어떠한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게 하려는 건지 빈틈없이 입술을 틀어막고 한참, 레이가 가슴팍을 들썩이면 약간의 틈을 허용해 주듯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금 쉬이 고이지 않는 타액을 찾아 몇 번이고 꾹 밀어붙여 왔다. 그러신다고 나올 거 같진 않지만. 누르면 누르는 대로 베개에 파묻히니 귓가에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스쳐 소란스러웠다. 그건 쓰라렸으나 입 안에 바짝 힘이 들어가게 만들기도 했다.
얼굴이 잠시 떨어지는 사이사이 이령아, 이령아. 하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소음 너머로도 뚜렷이 들렸다. 목 안이 간지러워 턱을 위로 빼려고 하면 큰 손이 내리누르고, 더욱 머리에 열이 올라 결국 힘들다 한숨을 뱉었다.
“미안.”
검제는 집요하게 혀를 섞던 것치곤 쉽게 떨어져 뺨에 가만히 입술을 내리누른 뒤 일어났다. “눈에 잠이 가득하네.” 그리고 눈을 감겨주었는데, 제가 눈을 뜨고 있었던가? 그걸 보고 있던 쪽이 더 악질인 건…. 레이의 생각은 드문드문 끊기듯 이어졌다. 다시 눈을 뜨면 전염병 디버프는 풀려있을 것이다.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말하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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